북한은 6·25전쟁의 발발원인을 어떻게 왜곡하고 있는가?
기자 : 관리자 날짜 : 2022-06-03 (금) 15:14


우리가 매년 맞이하는 6월은, 적어도 우리 민 족에게 있어서는 결코 지울 래야 지울 수 없는 상흔(傷痕)을 되새기게 하는 달이다. 그도 그럴 것이 지금으로부터 72년 전인 1950년 6월 25 일, 북한의 기습남침으로 자행된 6.2전쟁으로 인해 300만명 이상의 민간인 사상자가 발생하 고 1천만명 이상의 이산가족 발생, 그리고 전국 토가 풀 한포기 제대로 자라지 못할 정도로 초 토화(焦土化)가 된, 그 피해가 너무나도 컸기 때 문이다. 이럼에도 불구하고 그 전범(戰犯)국인 북한은 기습자체를 전면 부정하는 가운데 오히려 “미국 의 사주(使嗾)를 받아 남측이 북침을 한 것”이라 주장함으로써 후안무치한 행태를 드러내고 있 다. 여기에 더하여 1970년 7월에는 공산권 국제 기구인 ‘국제민주법률가협회’를 통해 6월 27일 부터 7월 27일까지를 ‘반미공동투쟁월간’으로 설정하는 가운데 지금까지도 북한의 전 관영매 체가 해마다 이맘때가 되면 이런 왜곡(歪曲)을 변 함없이 주장하고 있으며, 주요 교육기관에서도 한창 자라나는 학생들을 대상으로 집중적으로 전파하고 있으니, 이 얼마나 안타까운 일인가? 특히 북한당국은 이 전쟁의 발발일을 전후하 여 인민들에 대한 반미 사상교육을 크게 강화하 기 위해 지역과 단위별로 선동원을 내세워 작업 휴식시간에 근로자들을 대상으로 하여 “제국주 의에 대한 환상”을 갖지 말도록 교양하는 동시에 해설담화·예술소품공연 등 다양한 형식과 방법 을 동원하고 있다. 이와 함께 이 전쟁당시에 “미군이 인민을 대량 으로 학살하였다”고 날조하여 주장하면서 건립 한 황해남도의 ‘신천박물관’ 및 대동강의 ‘푸에 블로호’ 등에 대한 참관을 시키는 가운데 “미제 야말로 조선인민의 불구대천의 원쑤이며, 한 하 늘을 이고 살 수 없는 백년 숙적(宿敵)”으로 단언 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 전쟁의 진상(眞相)은 어떠한가? 이를 위해서는 이 전쟁을 전후한 사정을 살펴 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1945년 12월 소련의 수도 모스크바에서 열린 미국·영국·소련의 3상(相)회의에서 ‘신탁통치안’ 이 발표된 이후 한반도에서는 찬탁(贊託)과 반탁 (反託)이라는 분열을 기점으로 하여 이념적으로 첨예하게 대치하였다. 그리고 1948년 남과 북에 각기 분단정권이 들어서면서 가속화된 폭력적 정치투쟁으로 비화되는 가운데 제주도의 4.3사건과 여수·순천반란사건으 로 이어졌고, 바로 이 즈음 북한의 공산세력은 노동계 의 파업투쟁을 비롯하여 폭 력투쟁을 결렬하게 선동하 였다. 이 때문에 38도선 일대에 서는 크고 작은 전투가 지속 적으로 이루어졌으며, 이런 가운데 ‘전한반도의 공산화 통일’(무력적화통일)을 꿈꾸 던 김일성은 1949년 중반부터 오늘날 우리가 흔 히 사용하는 대남 ‘위장(僞裝) 평화공세’를 적극 적으로 펼치기 시작하였다. 즉 북한당국은 지속 적인 대남통일투쟁의 전개와 함께 남민전(南民戰)과 북민전(北戰)을 통합하여 ‘조국통일민주주 의전선’ 결성대회를 갖고 이른바 ‘평화통일방안’ 을 제시하였던 것이다. 당시 이 단체가 내세운 방안은 1) 조선인민 자신의 통일사업 해결 2) 미 군 및 유엔한국감시위원단의 즉각 철수 3) 1949 년 9월 15일 남북한지역에서의 동시선거를 통한 ‘조선공화국’ 수립 등이었다. 이어 1950년 6월 7일에는 통일입법기구를 설 립하기 위해 8월 5-8일 사이에 총선거 실시를 주장하였고, 6월 19일에는 “통일은 먼저 남북 한의 의회를 통합함으로써 달성될 수 있으므로 6월 21일 서울이나 평양에서 협상을 할 것”을 제 안하였다. 이렇듯 외형적으로는 남북한의 통일에 매우 적극적인 입장과 자세를 표명하면서도 그 이면 (裏面)에서는 남침의 기회를 잡기 위해 2차례 (1949.3.3.-20, 1950.3.30.-4.25)에 걸쳐 소련 의 모스크바를 방문하여 스탈린에게 남침(南侵) 에 대한 동의를 구하는 가운데 중공의 마오쩌둥 에게도 지원을 요청하는 위장평화공세를 펼쳤던 것이다. 이런 가운데 1949년 6월 미군이 철수하고 이 듬해인 1950년 1월 12일 미국의 애치슨장관이 “한국이 미국의 극동방위선에서 벗어났다”는 선 언을 발표하자 호시탐탐(虎視耽耽) 남침기회를 엿보던 김일성은 소련과 중공의 동의 및 지원을 받아 민족사의 최대비극인 6·25전쟁을 일으켰던 것이다. 이 전쟁이 아무런 준비도 하지 않았던 상황에서 북한에 의해 자행되었다는 점은 발발 몇 일 전까지 한반도 정황을 분석·보고하였던 미 국의 중앙정보국(CIA)의 보고서조차 “북한은 소 련의 위성국가로서 독자적인 전쟁을 수행할 능 력이 없기 때문에 남침가능성은 매우 낮다”고 평 가했을 정도였다. 그러나 이 전쟁과 관련한 국가들의 ‘극비문서’ 가 공표(公表)되기 이전인 1980년대까지만 하여도 이런 정황에 관한 정보가 엄격하게 제한을 받 는 상황에서 그 발발원인에 관해서는 여러 가지 가설(假說)이 제기되어 왔을 뿐이었다. 즉 “소련 의 사주를 받아 북한이 민족해방전쟁이라는 명 목으로 일으킨 남침전쟁”이라는 이른바 ‘전통주 의학파’의 시각과 “남북 쌍방의 책임 또는 미국 과 한국이 남침을 유도한 전쟁”이라는 ‘수정주의 학파’의 주장이 평행선을 그었던 시기였다. 이외 에도 제한적 남침설과 제한적 북침설, 스탈린주 도설, 한미 공모설, 내란확전설 등 다양한 설(說) 이 제기되었었다. 당시 북한도 ‘수정주의 학파’의 입장을 받아들 이면서 “조선인민의 철천지 원쑤 미제침략자들 과 그 주구(走狗) 리승만 괴뢰도당은 조국을 평화 적으로 통일할데 대한 우리의 합리적인 통일방 안을 거부하고 드디어 1950년 6월 25일 불의에 공화국 북반부에 대한 무력침공을 개시하여 조 선인민을 반대하는 침략전쟁을 일으켰다”고 강 변(强辯)하였다. 그러나 1990년대에 접어들면서 전세계적으로 냉전적 기류가 사라지는 가운데 이 전쟁과 관련 한 국가들에서 하나씩 관련문건이 공개되자 그 진면목(眞面目)이 백일하에 드러나게 되었다. 그 대표적인 것이 바로 러시아의 3대 국립문서보관 소 중 하나인 사회정치사문서보관소(RGASPI) 의 문서자료(중앙일보 2008.6·25.자 참조)로, 이 곳에서는 6·25전쟁 발발 두달 뒤인 8월 27일 당 시 소련 수상인 스탈린이 체코의 코드발트 대통 령에게 보낸 내용(※ 김일성의 남침계획 승인 등 6·25전쟁 촉발의 핵심내용과 함께 전쟁 직후 소 집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 소련이 불참한 것 이 미국이 참전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치밀한 계획의 일환이라 설명하고 있음)이며, 또 하나의 입증자료는 바로 ‘후르시쵸프 회고록’인데, 이 책자에서는 “6·25전쟁의 연출자는 스탈린이었 고, 주역은 김일성이 맡았음”을 밝히고 있다. 이밖에도 ‘비밀’에서 해제된 미국이나 중국 등 여러 국가에서의 많은 공문서 및 관련인사들의 증언은 이 전쟁이 소련 의 전폭적인 지원아래 무 력남침을 준비해 온 김일 성이 아무런 준비도 하지 않은 당시 이승만정부에 대해 선전포고(宣戰布告) 도 없이 침략을 감행하여 수도 서울을 불과 3일 만 에 내주고 대구까지 밀려 났던 상황을 입증해 주고 있다. 이 전쟁의 발발 당시 북한은 병력 20여만 명에 소련제 T-34 탱크 242대와 화포 2,492문, 함정 110척, 군용기 220대 등을 보유하고 있었던 데 비해 우리는 병력 10여 만명에 탱크는 단 1대도 보유하고 있지 못했고. 겨우 화포 1,051문과 함 정 36척, 군용기 22대 등이 있었기 때문에 육탄 (肉彈)으로 대적할 수밖에 없었으니, 이런 상황에 서 우리가 미국과 함께 남침을 유도하였다는 북 한의 주장은 “지나가는 소도 웃을 법”한 억지 춘 향적 논리에 불과하다. 결국 6·25전쟁은 북한이 주장하는 것처럼 ‘미 제의 침략을 물리치고 조국의 자유와 독립을 수 호하기 위한 정의의 민족해방전쟁이자 조국해방 전쟁“이 아니라 김일성의 야욕과 스탈린의 팽창 주의, 한미관계의 약화, 한국의 군사적 대비사태 미흡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가운데 소련의 스 탈린이 총감독을 하고 중공의 마오쩌둥이 연출 을 맡아 측면으로 지원하는 가운데 김일성이 주 인공으로 일으킨 민족 최대의 비극이라 할 수 있 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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