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양이 서서히 수평선 가까이 떨어지자 하늘빛이 시시각각 변하기 시작했다. 수평선 가까운 곳은 해무가 끼어 암적색을 띠고 위쪽은 밝은 오렌지색이었다. 태양이 서서히 가라앉으며 노랑에서 주황, 주황에서 주홍으로 변하더니 수평선에 닿는 순간 검붉은 색을 띠며 오메가로 변했다.

그 순간 마치 작은 물방울이 큰 물방울에 끌려 들어가듯 태양이라는 작은 물방울이 바다의 큰 물방울에 조금씩 끌려 들어가기 시작했다. 시뻘건 불덩어리가 수평선에 반쯤 잠겼을때 어선 한 척이 그 속으로 미끄러져 들어갔다. 가라앉고 있는 불덩어리 속을 작고 검은 배가 서서히 통과할 때 노을빛이 짙어지며 황혼을 불러들였다.

허허로운 무의 공간을 노랑· 주황· 주홍으로물들이며 침잠하는 색체의 마술사!…… 노을은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그리움이었다. 어두운 수평선 밑으로 황홀한 빛의 띠들이 층층이내려앉자, 뒤이어 찾아온 황혼이 그리움과 함께 평온과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 황혼의 바다는 애틋함 속에 평화로웠다.

이윽고 검은 바다가 마지막 남은 빛을 빨아들이자 천지는 어둠에 잠겼다. 나는 어둠 속 갯바위에 그대로 앉아 있었다. 파도가 바위에 ‘철~썩!’ 부서지며 얼굴에 물보라를 날렸다. 낮보다 진한 갯냄새가 풍겼다. 그 때 어두운 바다 위를 물새 떼가 날았다. 낮 동안 격자봉에서 놀던새들이 잠자리인 작은 섬으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그들은 망끝전망대 앞에 있는 갈도와 옥매도 쪽으로 방향을 잡은 듯 ‘사-악! 사-악!’ 날갯짓 소리를 내며 어둠속으로 사라졌다. 나는 한동안 새가 날아간 어두운 하늘을 바라보았다.

빛이 사라지자 어둠이 찾아왔다. 빛과 어둠은 서로 다른 세계에 살고 있었다. 낮의 광명이사라지자 먼 우주에서 어둠이 찾아오는 것이었다. 어둠은 별과 함께 평온한 느낌으로 다가왔다. 그때 개밥바라기가 저녁 달라고 조르는 듯서쪽하늘에서 커다란 눈을 껌벅거렸다. 초저녁엔 제일 먼저 서쪽에서 반짝이다 새벽녘엔 가장 오래 동쪽 하늘 지키는 별!…… 나는 개밥바라기가 되고 싶었다. 가장 밝고 오래 빛나는 그녀의 별이 되고 싶었다. 본문 내용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