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의 무기 개량과 삼국통일


고대의 무기와 공성전
  무기는 크게 고대부터 지속적으로 사용된 냉병기(冷兵器)와 화약을 주원료로 사용하는 화기(火器)로 구분된다. 냉병기는 다시 단거리 접전시 사용되는 단병기(短兵器)와 일정 거리를 두고 공격할 수 있는 장병기(長兵器) 그리고 비교적 원거리에 공격할 수 있는 발사무기로 나눌 수 있다.
  대표적인 단병기는 도(刀), 검(劍) 등의 칼류이고, 장병기는 모(矛), 과(戈), 극(戟) 등의 창류이며, 발사무기는 궁(弓), 노(弩) 등의 활류이다. 이러한 칼류, 창류, 활류는 이른 시기부터 야전에서 사용되어 왔다.
  그런데 방어력을 높이기 위해 점차 축성술이 발달하고 성곽이 견고해짐에 따라, 이를 공격하기 위한 공성무기가 발달하기 시작하였다. 성을 원거리에서 공격하기 위해 돌을 날릴 수 있는 투석기(投石機), 대형의 노를 수레에 고정시킨 상자노(床子弩) 등이 개발되었다. 성안을 정찰하기 위해 위아래로 오르내릴 수 있는 소차(巢車)와 망루차(望樓車)가 만들어졌으며, 성 앞의 해자를 건너기 위해 호교(濠橋)와 절첩교(折疊橋) 등이 제작되었다.
  그리고 성벽으로 접근하기 위해 방호벽을 두른 수레인 분온차(轒轀車), 성벽을 오르기 위해 운제(雲梯), 성문을 부수기 위해 당차(撞車) 등이 개발되었다. 이러한 공성무기들은 중국의 경우 대부분 당송시기를 거치면서 광범위하게 사용된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신라의 공성무기 도입
  신라의 경우도 삼국의 상쟁이 격화되고 공성전의 비중이 높아짐에 따라, 공성무기가 도입되고 개발되어 나갔을 것이다. <삼국사기>의 직관지 무관조에는 사설당(四設幢)이라는 부대가 기록되어 있다. 사설당은 노당(弩幢), 운제당(雲梯幢), 충당(衝幢), 석투당(石投幢)으로 구성되어 있다.
  사설당의 부대명인 노, 운제, 충차, 투석기 등은 모두 공성용 병기라고 할 수 있다. 이에 사설당은 공성전을 위해 만들어진 전투부대라는 견해가 있다. 그러나 이들 4부대를 아우르는 군단명에 ‘설(設)’이라는 용어가 들어가 있는 점에서 볼 때, 공성무기를 제작하는 특수병기창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삼국사기>에 따르면, 포노(砲弩)는 6세기 중엽인 진흥왕대에 이미 제작되어 성 위에 설치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포노의 정확한 형태는 알 수 없지만, 공수성용으로 개발된 대형의 노로 추정되고 있다. 그렇다면 노당은 그 이전 시기에 창설되어 활동하였을 것으로 판단된다.
  신라는 6세기 부터 적극적인 대외 공세를 취하면서 공성무기에 대한 필요성도 점차 증대되었을 것이다. 진흥왕대를 전후하여 운제, 충차, 투석기 등이 도입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이 시기는 초보적인 제작단계에 머물러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
  중국에서는 이들 병기가 한나라 무렵에 이미 사용되었지만, 신라가 이러한 무기의 제작기술을 사용하고 규격화한 것은 6세기 이후였던 것으로 파악된다. 당시는 고구려와 수‧당이 전쟁을 벌이던 시기였고, 수와 당은 고구려의 산성을 공격하기 위해 이러한 공성무기를 적극적으로 활용하였다. 중국세력과 동맹국이었던 신라는 이 시기를 전후하여 공성무기에 대한 기술을 전수받고 체계화시켜나갔을 가능성이 높다.

신라의 무기 개량과 전담부서의 설치
  신라는 공성무기에 대한 기술을 수용한 후 이에 대한 개량에 박차를 가해나갔다. 결국 나당전쟁을 전후하여서는 중국보다 나은 노 기술을 보유하게 되었다. 669년 당은 조서를 전달하고 신라의 노 기술자 구진천을 당으로 데리고 갔다. 신라와의 관계가 악화되던 시기에 상대국의 새로운 군사기술을 획득하기 위한 조처였다.
  당시 신라 노의 사거리는 1,000보에 달했고, 당은 신라의 노 기술을 획득하고자 하였다. 그러나 구진천은 끝내 노 기술을 당에 전수해 주지 않았다. 구진천이 제작 가능했던 노는 사거리를 감안해 볼 때 일반적인 노가 아니라 상자노와 같은 대형의 노였을 가능성이 높다.
  당시 구진천이 만든 노는 목노(木弩)라고 되어 있다. 이를 단순히 나무로 만든 노라고 할 수는 없다. 중국사서인 <통전(通典)>의 수거법(守拒法)에 따르면, 목노는 활의 길이가 1장 2척 즉 3m 60cm에 달하는 대형의 노라고 되어 있다. 이 정도 크기의 노라면 대형 수레에 올려놓고 사용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중국의 경우 사거리가 1,000보에 달하는 노가 처음 사서에 기록된 것은 송나라 시기의 상노(床弩)이다. 전체적인 맥락에서 볼 때 신라가 만든 ‘천보노’는 중국의 대형 노 제작 기술보다 앞섰던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이러한 신라의 대형 노를 전문적으로 제작하는 부대가 바로 노당이었던 것이다.
  노의 제작과 노당의 설치는 이미 진흥왕 무렵에 이루어진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그렇지만 이 시기의 노당은 운제당, 충당, 석투당과 함께 사설당으로 새롭게 재편된 진평왕 무렵의 노당과는 성격이 달랐을 것으로 보인다.
  이전 시기의 노당은 노를 규격화하고 전문적으로 생산하는 부대였다고 한다면, 사설당이 설치된 시기의 노당은 공성무기로 활용하기 위해 노를 개량하고 대형화하여 공성무기를 양산하는 부대로 변모하였던 것이다. 신라의 이러한 무기의 개량과 양산 체제의 구축은 삼국을 통일하고 나당전쟁(羅唐戰爭)을 승리로 이끄는 밑거름이 되었다고 할 수 있다.

신라의 삼국통일과 한계
  나당연합군은 660년 백제를 멸망시키고, 668년 고구려를 멸망시켰다. 이후 신라는 나당전쟁(669~676)에서 승리하여 삼국을 통일하였다.
  우리나라 국민 대부분은 삼국을 신라가 아니라 고구려가 통일했으면 하는 바람을 가지고 있다. 신라의 삼국통일로 인해 우리나라의 영토가 한반도로 국한되었고, 광활한 만주벌판을 잃어버렸다고 인식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재의 아쉬움으로 과거 신라의 행동을 재단해서는 곤란하다.
  신라는 대륙을 호령하던 고구려와 해상강국을 건설한 백제의 틈바구니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필사적이었다. 삼국 가운데 가장 후진적이었기 때문에, 가장 활발하게 자구책을 강구할 수밖에 없었다. 신라는 백제의 위협에 맞서 고구려와 왜에 사신을 파견해 동맹을 맺고자 하였다. 그러나 이는 무산되었고, 마지막으로 당을 끌어들였다. 결국 나당연합군을 조직하여 백제와 고구려를 차례차례 무너뜨렸던 것이다.
  신라가 외세를 끌어들여 백제와 고구려를 멸망시켰기 때문에, 삼국통일은 한계를 가진다고 볼 수도 있다. 그런데 당시 삼국은 모두 외국이었다. 중국이나 일본보다는 종족적으로 문화적으로 가까울 수 있지만, 엄연히 외국이었다.
  다시 말해 신라 입장에서는 고구려, 백제, 당, 왜 모두 외세였던 것이다. 민족의식이 생겨난 것은 신라가 삼국을 통일하며 당과 맞서 싸우면서 싹트기 시작하였다. 그러므로 현재의 시각으로 신라가 외세를 끌어들였다고 비난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신라는 처음 경주분지에서 출발하여, 점차 경상도 지역으로 세력을 확장하였다. 진흥왕대에 한강 유역으로 진출하면서 고구려 및 백제와 어깨를 나란히 하였다. 한강 유역을 점령하게 되자, 소백산맥을 중심으로 방어하던 이전 시기와는 달리 방어전면이 두 배 이상 넓어졌다.
  이로 인해 고구려 및 백제의 적극적인 견제를 받을 수밖에 없었다. 신라의 자체 역량이 한정된 상황에서 방어에 공백이 발생하였던 것이다. 신라는 이러한 방어 공백을 메꾸기 위해 당을 이용하였던 것이다.

신라의 북진 포기와 현실 인식
  그렇다면 신라는 삼국을 통일한 후 왜 북진하지 않았을까. 당시 신라의 입장으로 돌아가 보자.
  신라는 길게 보면 한강 유역을 장악한 6세기 중엽부터, 짧게 보면 대야성이 백제에게 점령당한 7세기 중엽부터 백제 및 고구려와 끊임없이 싸워야만 했다. 나당연합을 결성하여 백제와 고구려 멸망시킨 후에는 당과 또다시 전쟁을 치루었다. 이렇듯 신라는 수십년 간 치열한 전투를 거친 후에야 어렵사리 삼국을 통일할 수 있었다.
  통일 후 신라의 영토는 경상도를 중심으로 하던 이전 시기에 비해 두 배 이상 넓어졌고, 백제와 고구려 유민을 받아들여 인구도 상당히 늘어났다. 그러나 백제와 고구려의 옛 땅은 제대로 장악되지 않은 상태였고, 수십년 간 전쟁을 치루었던 신라 백성들의 삶은 피폐하였으며, 염전사상(厭戰思想)도 팽배하였을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현재 우리의 바람을 위해 신라인들에게 북진을 강요하는 것은 너무 가혹한 처사가 아닐까.
  신라는 통일 후 대동강 이남의 영토에 만족하고, 민심을 수습하며 백제와 고구려의 옛 땅을 정비하는 일에 주력하였다. 당시 당은 대체로 압록강을 신라와의 경계로 인식하였다. 신라가 더 이상 북진하지 않음에 따라, 대동강 이북과 압록강 이남 지역은 자연스레 신라와 당의 완충지대로 남게 되었다.
  만약 신라가 압록강을 건너 북진한다면, 또다시 당과의 전면전을 치루어야만 했다. 이제 막 통일을 달성한 신라의 입장에서 북진은 득보다 실이 될 가능성이 높았다. 현재 우리의 입장에서 본다면 아쉬운 대목이 아닐 수 없지만, 당시 신라의 입장에서는 상당히 현실적인 선택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