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문현답」이란 말을 「우리의 문제는 현장에 답이 있다」의 준말이라고 얘기하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다. 현장을 중요시하지 않는 정책 결정에 대해 안타까워하는 사람들의심정을 대변하는 말이라고 생각된다. 그래서 이번 호에서는 정부 출연과학기술연구소의 연구개발 현장에서 힘들게 민군 기술협력을 추진하고 있는 인물을 만나 민군 기술협력의 현 실태를 조명해 보았다.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의 51년 역사상 장군 출신으로는 처음으로 정식 연구원으로 임용되어 8년째민군 기술협력 업무에 전념하고 있는 김 용환 안보기술개발단장이 그 화제의 주인공이다.

먼저 한국과학기술연구원이 지난 2월 설립51주년을 맞이한 데 대해 축하를 드립니다.감사합니다.

KIST는 1966년 2월 10일 국가 경제개발에필요한 과학기술 개발을 목적으로 고 박정희대통령께서 한국 최초로 설립한 과학기술 종합연구소입니다. 지난 반세기 동안 한국의 경제 발전사와 맥을 같이 하면서 국내 산업발전의 밑거름이 된 과학기술의 산실입니다.

KIST가 설립된 후, 국가 경제발전에 따라 다양한 연구기관의 소요가 늘게 되어 항공우주연구소,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 한국해양연구원 등 15개 정부 출연 연구소가 KIST를 모체로 분리되어 나간 후 훌륭하게 운영되고 있습니다. 이러한 연구소들의 뿌리가 KIST에 남아있기 때문에 지금도 다양한 분야에서 매 년수백 건의 중요한 기초기술이 개발되고 있으며, 그 성과를 인정받아 최근 전 세계 과학기술분야 정부연구소들을 대상으로 한 평가에서 6위를 차지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동안 KIST에서 개발한 기술들이 국가 발전에도 기여하였을 뿐만 아니라 일부 기술은 국방분야에도 활용되었겠지요?

KIST는 설립 초기부터 포항제철 건설, 중공업 육성 등 국가 핵심산업 발전을 위한 마스터플랜을 수립했으며, 한국 최초의 컬러TV, 한국 최초의 전자계산기 등도 개발하였습니다. 해군 최초의 국산 고속정은 KIST에서 설계하였고, KIST가 개발한 지하 탐지기술로 양구 4땅굴도 발견하였으며, 이라크에파견한 한국군에 제공된 정찰로봇도 KIST의작품입니다.

김단장은 현역 시절에는 획득분야에서 오래 근무하셨고 전역 후에도 국방기술품질원 기술기획본부장 등 연구개발 관련 업무를 하시다가 과학기술 주관부처인 미래부의 연구소에 가셔서 민군 기술협력 기능을신설하셨는데 그 배경은 어떤 건가요?

제가 7년 전에 KIST 정책기획본부장으로 처음 들어왔을 때는 전혀 딴 세상에 온 느낌이었습니다. 한국 최고의 연구소라는 긍지와 자부심이 대단하다보니 기존 연구개발 분야 외에는 국방이나 경찰 등 안보 분야에 대한 관심도별로 없었고, 참여 필요성도 거의 느끼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미국이나 이스라엘 등 기술 선진국들은 국방 기술을 민에 활발하게 이전하고 첨단 민간기술을 군에 적극적으로 접목시키는데 비해우리는 이미 개발해서 잠자고 있는 기술도 이전하기 꺼려하는 모습을 보고 민군 기술협력을 선도하기 위한 안보기술개발단 신설을 건의하게 되었습니다.이런 현상은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이해하기 힘드는데 다른 나라들의 정부 연구소들도 국방 연구개발에 미온적인가요?

다른 나라들은 국방 연구개발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는데 그 배경을 살펴보면 국방 연구개발 예산이 충분하기 때문에 과학기술계의 연구소나 공과대학들에게 많은 연구를 의뢰하므로 민군 기술협력이 자연스럽게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과학기술계도 자체적으로개발한 기술을 활용하여 스스로 군에 소요를 제기하게 되므로 더 나은 단계의 연구개발을 이끌어내는 선순환의 구조를 만들고 있습니다.

선진국들은 정부 연구개발 예산의 약 30% 수준을 국방 연구개발에 배정하고 있고 미국은 무려 50%~55% 수준을 투자하고 있기 때문에 미국의 정부 연구소나 공과대학 교수가 정부 과제를 수주하면 두 개 중 하나는 국방 연구개발 과제입니다. 우리는 겨우 14% 수준에 불과하여국방과학연구소(ADD)와 방산업체에서 사용하는데도 부족한 실정이므로 민군 기술 협력에 투자할 여력이 미약합니다.

그렇다면 우리도 민군 기술협력을 활성화시키려면 국방 연구개발 예산을 대폭 증액시켜야 하지 않을까요?

우리는 불행하게도 국방 연구개발 예산만증액시켜서는 민군 기술협력이 잘 안 되는 구조로 고착되어 있습니다. 연구개발이 활성화되려면 소요 예산뿐만 아니라 분야별로 수많은 전문 과학자도 필요하고 각종 첨단 장비가요구됩니다. 민간 자동차 회사의 엔진만 연구하는 연구소 인력이 5천명 수준이고 텔레비전하나만 연구하는 연구소 인력이 5천명 수준인데 비해 군의 모든 무기체계 연구개발을 담당하는 ADD는 연구원이 3천명도 안되기 때문에2,300여 종류나 되는 무기체계에 대한 기술별심층 연구는 거의 불가능한 실정입니다.

그러다 보니 국방연구개발 예산 2조 5천여억원 중 완성품 체계개발을 담당하는 방산업체에약 2조원이 사용되고 핵심기술 개발에는 4천억원 정도만 투자됩니다. 통일 후의 미래전에대비하기 위해서는 기초 원천기술 연구를 강화해야 하는데 투자하는 예산은 2%(500억원)도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예산 부족도 문제이지만 기초 원천기술 연구개발을 담당할 전문 인력 확보가 제한되므로 무작정 예산만 증액시켜서는 효과를 얻기 어려운 구조입니다. 지금까지 우리는 대북 전력 강화에 중심을두고 방위사업을 추진해 왔지만 미래전에 대비하려면 국방 기초기술 연구개발에 더 많은인력과 예산을 투자해야 하지 않을까요?

그렇습니다. 우리 토종기술이 아니면 기술을 도입한 해외 업체의 허가를 받아야하기 때문에 방산수출도 곤란합니다. 그동안 방산업체들의 가동율이 50% 수준에 정체되고 있었던 것도 알고 보면 토종기술 개발 능력이 부족하여 외국 기술을 들여와 생산해야했고, 군에납품하여 수요가 충족되면 더 이상 생산도 할수 없었고 해외 수출도 어려웠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국방 연구개발을 시작했던 1970년대의 전력지수는 북한의 50% 수준이었습니다.미국이 원조한 전차, 장갑차, 미사일을 복제 개발해서라도 북한을 빨리 따라 잡아야하는 절대절명의 상황이었기 때문에 기간이 오래 소요되는 기초기술부터 연구할 여유가 없었습니다. 그 당시에는 우리 국내의 기술 수준이 너무 열악하여 활용할 만한 민간 기술도 없었습니다.

그동안 우리 경제는 비약적으로 발전하여 대기업들도 자체 연구소를 운영하면서 세계 선진국 수준의 첨단 기술을 개발하고 있고, 많은 공과대학에서는 훌륭한 과학자들을 양성하고 있습니다. 정부 연구개발 예산도 20조원에 이르고 정부출연 과학기술 연구소도 미래부 산하에만 25개나 운영되고 있으며 기초기술 연구에만 수천 명의 과학기술 인력과 수조원의 예산이 투자되고 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군이기초기술 연구개발을 강화하기 위해 별도의 예산과 인력을 추가로 투자한다면 국가적인 차원에서 중복 투자가 될 우려가 있습니다.

그렇다면 지금까지 추진해 온 민군 기술협력 방식과는 다르게 국가적인 차원에서 연구개발의 투자 분야를 조정하는 등 획기적인 방안을 강구해 볼 필요가 있지 않나요?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만 민군 기술협력이그리 쉽지는 않습니다. 1998년에 민군겸용기술사업촉진법까지 만들어 민군기술협력을 추진했지만 2012년 정부는 14년간의 성과가 미흡했다고 평가하고, 2014년에는 민군기술협력사업촉진법까지 새로 만들어 추진하고 있지만아직 활성화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러한 문제점의 원인을 잘 살펴보아야 합니다.

수리온 헬기사업처럼 정부 부처들이 초기기획단계부터 협력을 시작하는 대형 사업은비교적 추진이 잘되지만 방사청 예산으로 추진하는 민군 기술 협력 사업은 초기 기획단계가 아니라 예산과 계획이 확정된 후에 기술 개발과제 형태로 공모합니다. 소요를 제안하는과정도 무척 복잡하고, 제안한 과제를 제안자가 수주 받는다는 보장도 없습니다.

이처럼 인센티브도 부족하고 타 부처가 일방적으로 통제하는 기존 방식 보다는 민군이최초 기획단계부터 협력하여 과학기술계가 자주적인 연구개발 사업으로 추진하는 민군 분담방식이 더 바람직하다고 봅니다.

이러한 민군 분담 방식이 효과적으로 운영되려면 기존 연구개발 기관들의 업무 분야조정이 필요할 것이고 국가적인 차원의 통제 체계가 수립되어야 하지 않을까요?

이제 우리 나라는 세계 10대 경제 강국으로성장했습니다. 민간 과학기술도 선진국 수준입니다. 국방 연구개발은 군 연구소 혼자 감당하기에는 너무 규모도 커졌고 기술분야도 다양해졌습니다. 현대전은 국가 총력전이며, 이에 대비하는 국방 연구개발도 범 국가적인 역량을 총동원하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전략 비밀 무기는 ADD에서 개발을 담당하는것이 당연하지만 수출할 수 있는 재래식 무기나전자 통신분야, 드론, 개인 병사체계 등 민간 기술이 더 발전한 분야는 정부 출연 과학기술연구소의 능력을 활용하는 것이 ADD의 업무 부담도 줄이고 중복 투자도 막을 수 있으므로 국익차원에서 더 바람직하다고 봅니다.

그러나 이와 같은 부처 간 조정 통제가 쉽게이루어지지는 않습니다. 그래서 과거에는 국가과학기술위원회를 만들어 정부 부처 간 이해관계를 조정했으므로 연간 중복 예산 조정액이 2천억원에 달할 정도로 효과가 있었지만 지금은 실질적인 조정 기능이 미래부로 이관되다보니 타 부처 조정 기능이 미흡합니다. 정부 부처간 이해관계를 조정하고 정부 연구개발예산의10%만이라도 국방 기초기술 분야에 투자하여초기 기획단계에서부터 기술협력을 선도할 수있는 국가적인 차원의 상부 컨트롤타워 기능 확보가 필요합니다.

민군 기술 협력을 하다 보면 현실적인 애로사항도 있었을텐데 제도적으로 개선해야할 점은 어떤 것이 있나요?

지난 7년간 민군 기술협력 업무를 수행하면서 이 분야에도 손톱 밑의 가시와 현장의 전봇대가 상당히 많이 있음을 발견하였습니다. 예를 들면 연구개발 결과의 소유권 문제입니다.

다른 정부 부처는 연구개발 예산을 지원하더라도 국가과학기술기본법에 의해 특허는 연구개발자 소유로 인정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방위사업청 예산으로 수행한 국방 연구개발 과제의 특허는 환수해 가서 국방 연구개발 참여에 제한이 되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문제를 적극적으로 제기하여 2015년에는 방위사업법을개정하여 군과 연구기관이 공동 소유하는 제도로 개선하였습니다.

또한 전문 연구기관이 소요제안을 해도 공모제도를 통해 저가로 신청한 업체가 개발권을차지하는 문제점을 제기하여 국방 전문 연구개발기관으로 지정된 연구소나 대학은 수의계약이 가능하도록 개선하였습니다. 그렇지만 복잡한 행정절차, 수많은 소집회의, 일방적인 시험평가 등 개선해야 할 현장의 문제점은 아직도 많이 있습니다. 결과만 가지고 책임을 추궁하는 감사기관의 자세도 군 담당자들의 사고방식을 더욱 경직되게 만들고 있습니다. 이제부터는 군으로 하여금 연구개발 현장의 어려움을적극 찾아 나서서 자기 일처럼 해결하게 만들도록 감사 체계도 개선해 나가야 합니다.

김단장이 현장에서 겪은 경험에 비추어봤을 때 민군 기술협력을 위해 군과 과학기술계가 함께 노력해야할 점은 무엇이라고보나요?

저는 상호 소통할 수 있는 기회가 많아져야된다고 봅니다. 군은 과학기술계가 어떤 기술을 개발했는지 어떤 기술을 개발하고 있는지잘 모릅니다. 과학기술 연구소들은 군이 어떤기술 개발을 원하는지 잘 알지도 못하고 알고싶어 하지도 않습니다. 한참 연구 성과를 내야할 시기인 61세면 과학자들이 퇴직합니다.

이러한 과학자들을 100명쯤 계약직으로 선발하여 군 정책부서에서 근무하게 하고, 군수/획득 분야에서 근무하다 전역한 예비역 장교100명 정도를 선발하여 과학기술계 25개 연구소에서 계약직으로 근무하게 한다면 상호 정보교류와 기술지원이 원활하게 될 것입니다.

이러한 전문가들의 교차근무를 위해 정부 연구개발 예산 20조원 중 연간 100억원만 투자한다면 훌륭한 민군 기술 협력 체계를 구축할 수 있을 것이며 연간 2천억원이 넘는 중복투자도 막을 수 있을 것입니다. 이제 민군 기술협력의 패러다임을 획기적으로 바꾸어야 할시대가 도래했습니다. 실천이 없는 개혁 방안은 신기루에 불과합니다.

좋은 말씀 잘 들었습니다. 현장 경험을 바탕으로 한 혁신적인 아이디어가 민군 기술협력의 꽃으로 활짝 피어나길 기대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