윗사람의 시기심을 발동시키지 마라

서양의 이순신, 벨리사리우스의 전쟁

장자국지보야(將者國之輔也) ― 『손자(孫子) 모공 제3편』



노병천
(예)육군대령, 리더십박사
전 나사렛대학교 부총장
한국전략리더십연구원 원장

소년 다윗이 그 막강한 거인 골리앗을 돌팔매 하나로 물리치자 백성들이 소리치며 외쳤다. “사울은 천천이요, 다윗은 만만이다!” 이 말은 사울왕이 천 명을 죽였다면, 다윗은 만 명을 죽인 것이나 다름없다는 말이다. 성경에 나오는 얘기다. 사울왕은 시기심에 머리끝까지 화가 났다. 백성의 칭찬이 자신을 비켜가고 다윗에게 집중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라를 구한 영웅인 다윗을 죽이고자 갖은 계략을 꾸미기 시작한다. 왕의 입장에서는 부하가 너무 특출 나게 뛰어나도 심기가 불편한 법이다. 그래서 2인자의 처세는 중요하다. 그렇다면 2인자의 처세는 과연 어떠해야할까?

벨리사리우스는 동로마제국의 황제 유스티니아누스를 위해 헌신했던 명장이었다. 당시 유스티니아누스는 콘스탄티노플에 수도를 두고 오늘날의 이스탄불에서부터 지중해 동쪽을 통치하고 있었다. 532년이 되자 유스티니아누스는 쿠데타로 인해 권좌를 위협받는, 매우 위태로운 상황에 처하게 된다. 전차경주용 대경기장인 히포드롬에서 폭도들에 의해 포위된 황제는 절체절명의 순간을 맞이하게 되는데, 바로 이때 벨리사리우스와 그가 지휘하는 군대가 영웅처럼 등장해 폭도들을 덮쳤고 대학살이 시작되었다. 무려 3만 명이나 되는 폭도들의 목이 달아났다. 이렇게 벨리사리우스 덕에 가까스로 위기를 넘긴 황제는 곧 그를 최고사령관에 임명했다. 이제 바야흐로 벨리사리우스의 시대가 열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는 반달족을 무찔렀고, 아프리카를 다시 병합했다. 그가 수도로 돌아오자 유스티니아누스 황제는 너무나 감명을 받은 나머지 좀처럼 볼 수 없었던 화려한 개선 행진을 열어주었다. 이 개선식은 로마 개국 이후 5백 년 동안 황실 혈통이 아닌 사람을 축하해준 유일한 행사였다. 그러니 얼마나 황제에게 인정과 대접을 받은 것인가. 이렇게 황제에게 분에 넘치는 애정을 받은 벨리사리우스는 갈수록 승승장구하게 된다. 535년, 고트족에게서 이탈리아를되찾는 작전에 앞장서서 순식간에 시칠리아 섬과 본토인 나폴리를 점령하며 북쪽으로 진격했다.

540년이 되자 벨리사리우스의 집요한 공격에 견디다 못한 고트족은 만약 벨리사리우스가 황제가 된다면 항복하여 그의 지배를 받겠다는 제의까지 하기에 이르게 된다. 벨리사리우스는 못이기는 척하며 이 제의를 받아들였고 고트족이 항복한 뒤에 황제 칭호를 거부했다. 왜냐하면 벨리사리우스는 누구보다도 황제의 마음을 잘 알았기 때문이다. 황제는 그보다 인기 높은 벨리사리우스를 시기하고 있었던 것이다. 언젠가는 벨리사리우스가 황제의 자리를 노릴 것으로 생각한 것이다. 그러나 벨리사리우스의 이러한 계산된 행동은 황제의 의혹을 누그러뜨리지도 못했을 뿐만 아니라 고트족에게 배신감을 안겨다 주어 적개심만 고취시켰다. 황제는 벨리사리우스를 이탈리아에서 소환하고 냉대했다. 그리고 이듬해에 메소포타미아에 파견해 사산 제국과 싸우게 했다. 이때 그는 몇 차례 승리를 거두지만 규정을 어기는 병사들 때문에 어려움을 당하게 되었고, 결국에는 황제에게 불충했다는 이유로 사령관직을 박탈당했다. 벨리사리우스는 겨우 복권되어 544년에 다시 이탈리아로 파견되었는데 이때 황제는 이전보다 벨리사리우스에 대한 의심이 많아졌기 때문에 충분한 병력과 군자금을 지급하지 않았다. 4년 동안 이탈리아 해안지방에서 전쟁을 하고 로마까지 잠시 동안 점령하기도 했지만 동고트족과 제대로 맞서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했다. 548년에 황후 테오도라가 죽자 그는 곧장 콘스탄티노플로 소환되었다. 여배우 출신으로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했던 황후 테오도라는 벨리사리우스가 곤경에 처할 때마다 적극적으로 그를 위해 황제를 조종했던 든든한 후원자였다. 559년에 훈족이 콘스탄티노플을 위협하자 황제는 그를 다시 불렀다. 벨리사리우스는 그가 구할 수 있는 모든 병력을 동원하여 훈족을 물리치고 나라를 안정시켰다.

황제는 벨리사리우스의 탁월함에 늘 의심을 품고 경계했으며 홀대했다. 그렇지만 나라가 위급할 때는 어쩔 수 없이 그를 불러 사용했다. 보통 이럴 경우 황제 못지않은 자신의 권력과 군사력을 이용해 반역을 시도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벨리사리우스의 선택은 달랐다. 훈족을 쫓아낸 후 조용히 자리에서 물러나 은퇴를 했다. 물러나야 할 때를 잘 안 것이다. 그러나 그는 3년 후에 황제의 암살 음모에 가담했다는 혐의를 받았다. 물론 그의 결백함이 밝혀졌지만 그의 명성에는 흠이 갔다. 그 후 어느 정도 황제의 신망을 찾은 그는 565년 3월에 죽을 때까지 평화롭게 살았다. 그리고 그토록 정성을 다해 섬겼지만 고마움을 느끼지 못했던 황제는 그가 죽은 지 불과 몇 달 후에 세상을 떠났다. 벨리사리우스는 비록 황제에게 부당한 대우와 의심을 받았지만 끝까지 변하지 않고 그를 섬겼으며 순종했다. 어느 나라든 가라면 가서 열심히 황제의 이름으로 싸웠다. 벨리사리우스의 업적으로만 본다면 아프리카를 제패한 스키피오, 카르타고의 한니발, 로마의 폼페이우스나 카이사르 못지않다. 그것도 대단히 열악한 상황을 딛고 이루어낸 성과이기에 더욱더 빛난다. 어떤 사람은 자신을 시기하고 미워한 왕에게 조금도 원망하지도 않고 묵묵히 목숨 바쳐 충성한 조선의 이순신에 비견하기도 한다. 벨리사리우스는 너무나 유명해서 후세에 전설까지 생겨났다. 가장 유명한 전설은 황제가 그를 너무 시기해서 장님으로 만들었기 때문에 늙어서는 길거리에서 구걸을 했다는 얘기다.

손자병법 모공(謀攻) 제3편에는 “장수는 나라의 보목(輔木)이다.”(將者國之輔也)는 말이 있다. 보목이란 수레의 양쪽 가장자리에 덧댄 나무를 말한다. 서로 맞물려 의지하고 있다. 그 사이에 틈이 생기면 무너진다. 나라에 있어 장수는 바로 그런 존재라 할 수 있다. 왕과 장수는 서로 신뢰하여 조금도 틈이 없어야 한다. 왕이 장수를 시기하여 틈이 생기면 곧 나라가 무너지는 것이다. 벨리사리우스의 생애를 보면서 우리는 중요한 교훈을 배울 수 있다. 아무리 그릇이 큰 리더라 할지라도 그 마음에는 인간본성의 시기심은 살아 있다. 그러므로 부하된 자는 많은 사람들에게 칭찬받고 환호를 받게 될 때 더욱 겸손하게 자신을 낮추고 절제해야 하는 것이다. 2인자로서의 처신은 매우 어렵다.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할 경우가 많다. 중요한 것은 그의 예기를 드러내지 않고 조용히 목적을 달성하는 것이다. 자신의 한계를 분명히 하는 것이다. 욕심을 드러내면 그로써 끝이다. 2인자 처세술의 달인은 단연 중국의 주은래라 할 수 있다. 그는 말한다. “보스자리에 대한 욕심으로 자신의 직분을 망각하지 말라!” 중화인민공화국 총리 주은래의 이름으로 남긴 그의 글을 보자.

“나는 1935년 준의회의에서 마오를 모시고 만리장정을 따라나선 때부터 죽는 날까지 41년 동안 2인자의 길을 묵묵히 걸었다. 귀족가문에서 태어나 공산당 초기 탑 리더의 코스를 밟던 내가 가난한 농부의 아들 마오를 중국혁명의 지도자로 추천하고 스스로를 낮췄던 것은 이민의 마음을 움직인 호소력이 그에게 있음을 알았기 때문이었다. 총리시절 행정보를 함에 모주석의 침상 옆에 꿇어 앉아야했고 방광암 수술을 받고 싶어도 마오의 허락이 떨어지지 않아 수술을 2년간이나 미루어야 했다. 방광암으로 죽어가는 초읽기의 시간 속에서도 미일과의 수교, 문화대혁명의 폐허 속에 놓인 국가경제재건, 등소평을 재신임하는 권력의 재편성을 위해 촌음을 다투었다. 나는 사망하는 순간에도 "다 죽어가는 나 따위는 돌보지 말고 다른 아픈 동지들을 돌보시오"라는 유언을 남기며 인민의 마음속에서 영원한 1인자, 인민의 벗으로 다시 태어났다.” 주은래는 생애 마지막 몇 년 동안 문화대혁명의 여파로부터 국가행정체제와 등소평 등의 인재를 보호하기 위해서 노심초사 하다가 1976년 1월 8일 78세의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1972년에 중국을 방문했던 닉슨 전 미국대통령은 이렇게 말했다. “모택동이 없었더라면 중국 혁명의 불꽃은 점화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주은래가 없었더라면 중국은 모두 타버리고 재만 남았을 것이다.” 제2인자로서의 처세와 제2인자로서의 역할이 얼마나 큰 것인지 잘 말해주고 있다.

將者 國之輔也 輔周則國必强
장자 국지보야 보주즉국필강
輔隙則國必弱
보극즉국필약
장수는 나라의 보목(輔木)과 같으니
보목이 주밀하면 나라가 반드시
강해지고, 보목에 틈이 있으면 나라가 반드시 약해진다.
오늘날 글로벌 경제위기에서 기업의 상사와 아랫사람은 서로를 도우며 각자의 리더십을 발휘해야 한다. 그런데 문제는 서로 부딪칠 때다. 윗사람은 자신의 속마음을 내보여서는 안 되고, 반대로 아랫사람은 윗사람을 설득하기 위해서라도 속마음을 정확히 헤아려야 한다. 특히 아랫사람은 자신의 지혜와 힘을 함부로 드러내서는 안 된다. 시기심과 경계심이 발동하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층층시하의 수많은 리더들은 과연 어떤 리더십을 구사해야 안전한 것일까? 두말할 것도 없이 ‘아랫사람’의 리더십을 발휘해야 한다. 그래야 윗사람의 신임을 바탕으로 자신의 지략과 소신을 펼칠 수 있고, 아래의 직원에게도 존경 받을 수 있다. 어떤 경우든 상사의 경계심과 시기심을 자극하는 행동은 삼가는 것이 몸에 좋다. 상사도 사람이다.

조직생활에서 상사의 시기심을
발동시키는 것만큼 어리석은 일은 없다.
將 者 國
장수 장 놈 자 나라 국
之 輔 也
갈 지 덧방나무 보 어조사